사회연구 Social Research
제69권 4호 2002년 겨울

인권, 전쟁법, 그리고 테러리즘
Human Rights, the Laws of War, and Terrorism

미카엘 이그나티에프 Michael Ignatieff



'두 개의 단어 - 인권과 테러 - 는 흔히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권은 선하고, 테러는 악하다. 내 전제는 그 대립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과 테러는 서로 반대편에 위치한다. 테러 행위는 다른 많은 권리들과 함께 생명권을 침해한다. 그러나 동일하게도, 인권 - 특히 자기결정권 - 은 20세기에 테러 행위를 포함하여 정치적 폭력의 호소에 주된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 논문에서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를 검토할 것이다: 인권이 대테러리즘에 부과하는 한계, 그리고 인권이 테러에 부여하는 정당성. 내 목적은 도덕적 체계로서 인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며, 그것의 강점과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테러와의 전쟁에서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행동 유형을 제한하는 주요한 원칙들로서 인권을 이야기하자. 인권은 우리가 무엇을 지지해야 하는지 규정하기도 하고, 우리가 스스로를 방어하려 할 때 우리의 손목을 묶기도 한다. 자기 등 뒤로 손을 묶는 것은 대중적이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인권 독트린에서 기본적인 생각은 미리 약속한다는 것이다 fundamental to the idea of all rights doctrines is the idea of precommitment. 권리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동료 시민 혹은 인간을 대상으로 어떤 것들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권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권리이고, 따라서 박탈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민ㆍ정치적 지위, 도덕적 가치나 행위에 연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신이 매우 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인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러하다면, 테러리스트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어야 한다. 왜 안 되는가? 권리라는 것이 일단 받을 만하다는 가치나 도덕적 가치와 구별이 된다면, 권리라는 바로 그 개념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도 권리는 부여된다.

사이렌의 노래에 현혹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다는 율리시즈처럼, 민주국가는 인권을 약화시키고 심지어 파괴하려는 유혹에 심각하게 빠질 때조차 스스로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미리 약속한다. 테러리즘은 이러한 선약을 자진해서 지키려는 사회적 의지를 가장 크게 시험하는 것 중 하나다. 테러리스트가 개방된 사회의 자유를 악용하여 퍼져나가고 수사망을 피하며 공격을 계획하는 정도에 따라, 사회는 자신의 자유를 던져 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유혹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진실로, 그것은 법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로마인의 속담, salus populi primus lex - 사람들의 안전이 최고의 법이다 - 는 비상 사태를 위한 비상조치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 그 자체는 사람들의 안전에 궁극적으로 장애가 되어선 안 된다. 이 원칙에 호소하여, 테러 위협에 직면한 현대 사회 - 예를 들어, 이태리, 스페인, 영국 - 는 참정권을 축소했다. 테러 활동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집단에게는 선거나 공직이 허용되지 않는다. 테러 단체와의 관계가 의심되는 사람들은 재판없이 구금되거나 억류될지 모른다. 이러한 권리의 축소는 salus populi primus lex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권리가 무조건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과 충돌한다.

테러 비상 사태는, 인권의 보편성이라고 가정되었으나 그 동안 소홀히 다뤄왔던 측면들을 조명한다. 보편성에 대한 대부분의 토의는 문화를 가로질러 인권이 보편적인가 아닌가라는 현안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인권이 개인들간에도 그리고 평상시와 비상시 사이에도 보편적어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테러 사태는 이러한 보편주의적 약속에 긴장을 야기한다 Terrorist emergencies put these universalist commitments under strain. 그 이유는 테러가 공포를 야기하고 공포에 떠는 다수 대중 majority이 자신의 힘으로 소수자 집단 minority을 억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거의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날드 드워킨이 지적한 것처럼, 테러 위협 시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안보를 일반적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상의 안보와 소수 용의자 집단의 자유를 거래하는 것이다. 소수 용의자 집단이란 성인 남성 아랍인이며, 이들 중에서 특히 이민법을 위반한 집단을 가리킨다 (드워킨, 2002). 테러 위협이 다수 대중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 몇몇 사람의 인권을 축소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기 쉽다. 그러나 공포에 떠는 다수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정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권리는 존재한다.

권리는 미리 약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전제는, 우리의 안보와 저들의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 원칙의 수정에 반대하는 성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The idea of rights as precommitments presupposes the idea that when we face the choice between our security and their liberty, we start from predisposition against the amendment of principle. 우리는 원칙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능한 변하지 않고 여전히 보편적으로 남아있는 대다수 권리에 대한 가치 때문이다 because of the value to the majority of rights remaining as invariant and universal as possible. 만약 인권이 다른 이들로부터 쉽게 제거된다면, 우리에게 인권은 그렇게까지 가치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가능한 한 예외가 거의 없게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이다.

법의 지배에는 예외조치 exceptions가 전혀 없어야 하며, 비상사태 emergency와 훼손조치 derogation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일부 시민 자유론자들은 믿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은 일시적 권리 유보가 헌법적 구조 자체의 보존에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즉 예외조치, 비상시기, 및 훼손조치는 헌법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존 핀과 다른 연구자들이 역설했던 것처럼, 법의 지배가 요청하는 바는 불변성 invariance이 아니라 공적인 정당성 public justification이다 (핀, 1991: 32). 국제인권법은 권리를 절대로 훼손하지 않겠다 absolute nonderogation of rights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공적 기구, 특히 사법부와 선출된 입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무를 통해서 훼손의 한계를 약속하는 것이다.

참정권, 인신 보호, 자유로운 결사, 임의 수사 및 체포로부터의 면제, 재판에 앞선 구금으로부터의 자유를 훼손하거나 유보하는 상황을 자유권 규약은 허용한다. 그러나 고문, 잔인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처벌, 사형 the infliction of death으로부터의 면제나 자유로운 신념과 같이 절대적으로 훼손되지 않을 권리 absolute nonderogable rights는 제외된다. 규약에 서명한 국가는 훼손조치를 UN 조약기구에 공개적으로 알리고 정당화해야 한다. 훼손조치를 공개적으로 정당화해야 하는 유사한 의무는 유럽 인권협약에도 적시되어 있다. 이것이 추구하는 바는, 고문과 같이 개인의 존엄성을 절대적으로 침해하는 조치로부터 테러 용의자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아내는 데 집중하고 책임성과 공적 정당성을 강제함으로써, 절대적인 약속이라는 관념에 의해 보호될 수 있는 것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This seeks to save what can be saved from the idea of absolute precommitment by focusing those precommitments on preserving terrorist suspects from absolute violations of personal integrity like torture and by insisting on accountability and public justification.

비록 우리가 고문이나 잔인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처벌을 고수할지라도, 다른 - 자유로운 결사 혹은 인신 보호에 대한 - 권리가 자주 훼손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인권의 불가분성에 대한 생각에 이의가 제기된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문제로써 as a causal matter, 하나의 권리는 다른 권리의 전제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인권의 불가분성을 믿을 수 있다. (아마르티아 센의 유명한 예를 사용하면, 자유로운 주장과 결사의 권리는 생존권에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 권리가 없다면, 당신은 식량이 떨어져 갈 때 항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과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 this sense of causal interdependence는 모든 권리가 비상 시기에도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생각과 구별된다. 센의 의미에서 권리가 분석적으로는 불가분하지만, 이를 인정하면서도 위급한 시기에는 몇몇 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좀더 기본적인 것이 된다고 우리는 여전히 역설할 수 있다.

우리는 비상시의 권리 유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예외에 의해 규칙은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기능할 수 있는가? 권리의 훼손조치는 차악의 타협인가, 아니면 평상시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하는 치명적 양보인가? 나는 차악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역설할 것인데, 이는 모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주적으로 권한이 부여된 축소조치에 따라 일부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묵인한다. 9ㆍ11에 뒤이어, 미국 내에 얼마나 많은 알 카에다 세포가 활동 중인지 아무도 모를 때, 이민 비자 기간을 위반한 사람 1,200명을 체포하여 행정적으로 구금하는 것이 합법화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가능한 빨리 공개적으로 행정적 청문회를 진행하고 법적 상담과 가족 면회를 허용하는 것 또한 당국의 의무였다. 이 청문회는 공개되지도 않았고 신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법적 검토의 대상이 됐고, 그래서 대법원은 아마도 이 제도의 최종적인 합헌성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이들 1,200명에 대한 권리 축소조치는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피구금자들이 실제적 혹은 잠재적 위험을 구성한다는 점을 행정부가 증명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 정당화는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남북전쟁 동안 인신 보호에 대한 아브라함 링컨의 축소조치는 비상사태시 필요한 훼손조치 중 좀더 나은 사례일 것이다. 이들 예외조치는 결정적으로 법의 지배를 손상시킬 필요가 없다. 그것들이 그러하다[역자주: 예외조치가 법의 지배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상사태시 유보된 권리는 평시에 결코 회복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To maintain that they do is to assume that rights suspended in emergency are never restored in peacetime. 모든 헌법은  비상시에 적용되는 규칙과 평시에 적용되는 규칙 사이의 차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 규칙이 영구적이지 않고 계속해서 해악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관리할 방법을 찾는다. 내가 취하는 입장은 본질적으로 남북전쟁 동안 인신 보호의 유보를 정당화했던 아브라함 링컨의 입장이다. 에라스투스 코닝에게 보낸 편지에 제시된 링컨의 입장은, 전시 인신 보호의 유보는 평시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외조치는 규칙의 지위를 잠식하지 않는다고 그는 역설했다. 예외가 없다면 규칙은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에라스투스 코닝에게 보낸 편지, 1989: 457-460; 닐리, 1991).

링컨의 이해에 따르면, 비상사태에 수반되는 문제는 예외조치가 일반적으로 헌법의 원칙에 위협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비상사태에 수반되는 문제는 예외조치가 구체적 상황 아래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문제는 공론에 쉽게 양보하기보다는 rather than simply offer a sop to public opinion, 실제적 또는 파악된 위협 actual or apprehended threat이 어느 수준에서 진정으로 비상사태를 구성하는지 확인하는 것이고, 이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유의 유보 혹은 축소가 필요한 것인지 증명하는 것이다. 9ㆍ11 이후 캐나다의 반테러 법률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캐나다 법 C-36에 대한 최근의 학술평가에 따르면, 테러 위협을 다루기 위해 실제로 이 법률은 이미 존재하는 형법에 많은 것들을 정말 추가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다니엘스, 맥클린과 로취, 2001). 스페인의 바스크 분리주의 정당에 대한 금지령에 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그것은 바스크 반테러 작전에 실제적으로 기여했는가 아니면 테러 공격에 대한 대중적 격분에 정치적으로 반응한 것인가 (우드워스, 2001)? 실제 위험은 좀더 많은 권력을 추구하는 행정당국에 의해 저질러지는 여론의 조작이며 위험의 날조 manipulation of opinion, the manufacture of danger다. 법의 지배는 비상사태 그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 의해 손상되면서, 실제적으로는 위협의 대처에 필요치 않은 비상조치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국가 권력이 책임있게 행사되는지 여부에 대해 검사하려면, 비상사태 혹은 반테러법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회의 조직들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The test of whether state power can be held to account when it makes these decisions is not so much what the emergency or anti-terrorist laws says but rather whether the institutions of a free society do their jobs. 이는, 물론, 입법, 자유로운 언론, 잘 조직된 시민사회, 그리고 행정부를 감독하는 독립적인 사법부의 기능이다. 행정부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했던 국가적 재난사태는 거의 없었는데, 루즈벨트가 일본인을 억류한 것이 현대의 가장 악명 높은 사례다 There have been few national emergencies where executives did not overstep the bounds, the internment of the Japanese by Roosevelt being the most egregious modern example.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그 제도들이 각자의 정당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계속해서 침묵했고, 행정부 내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가장 중요한 사법부는 명백하게 행정부를 지지했다 (로빈슨, 2001).

이 사례는 시민의 평등에 대해 제도적으로 널리 퍼진 관념들에 어느 정도 좌우되며 권리가 시행되는지를 조명한다. 이 관념들이란 어떤 집단의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 모두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이해된다는 의미이다 The example illuminates the extent to which rights enforcement depends on institutionally diffused ideas of civic equality, which mean rights derogations for any group are understood as potential threats to all. 아랍계 미국 시민과 미국 내에서 거주하고 일하며 공부할 자격이 있는 아랍인들이 시민의 평등과 그에 따른 정당한 절차라는 가정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It remains to be seen whether Arab-American citizens, and Arabs with the entitlement to live, work, or study in the United States, benefit from this presumption of civic equality and hence of due process. 그들이 지금까지 일본계 미국인의 운명을 벗어났다고 해석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로부터 배웠든, 아니면, 최악의 상황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든 That they have so far escaped the fate of the Japanese Americans is difficult to interpret: either we have learned from our history, or else, the worst is yet t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