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고 살 수는 있게 해줘야지…(맹자)

맹자(孟子).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가? 고리타분한 유가 사상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자. 그냥 ‘공맹(孔孟)’이라고 공자와 함께 지칭되는 자. 모두 맞다. 그가 속한 유가사상은 수 천년동안 동북아시아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으며, 사람들 사이의 상하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명분상이나마 평등을 주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고리타분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다. 또한 공자 사상을 유포시키는 것을 평생의 임무로 삼았으니, 자신이 공자와 함께 지칭되는 것을 알았다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맹자는 전국시대로 알려진 끊임없는 전쟁의 시기에 살았다. 이러한 전쟁 시기에 인간들, 특히 기층 민중들의 삶이 어땠을까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지구촌 곳곳도 계속되는 전쟁 속에 있으며, 그곳 사람들의 삶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기초적인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그들은 자신의 ‘인간성’ 자체도 온전히 보존하기 힘들다. 매우 강한 정신의 소유자이거나 아예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러한 끔찍한 상황에서 제정신을 갖고서 ‘인간성’이라는 것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맹자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맹자가 당시 백성들의 삶을 보고서 ‘짐승과 같다’고 했을까.

그런 맹자의 핵심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가 ‘성선설’, 즉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이다. 당시 백성들의 삶을 보고서 ‘짐승과 같다’고 하고서, 그 인간들의 본성이 선하다고? 이 자체만 가지고 본다면 맹자는 일종의 정신분열증 환자다. 그런데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한 데에는 나름의 정치적 이유가 있다.

맹자의 정치적 이상은 왕다운 자가 나타나 제대로 된 정치, 즉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지배층들을 찾아다니며 왕도정치의 실현을 권고하였다. 왕도정치를 실행하면 백성들이 좋아할 것이고, 결국 당신이 민심을 얻어 중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돌아다닌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제후들에게 왕도정치를 할 것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선설이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왕도정치를 권유하면서 왕의 과거 행위를 들춰낸다. 예전에 선왕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앞마당을 지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소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울면서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선왕은 궁금하여 그 소를 어디로 끌고가는 중이냐고 묻는다. 소를 몰고 가던 사람은 종(鐘)을 만든 후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 소를 잡아서 제사에 쓰기 위해서 끌고 간다고 답한다. 이에 선왕은 그 소를 놓아주고, 대신 양(羊)을 잡아서 제사에 쓰라고 한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은 왕이 커다란 소가 아까워 작은 양으로 교체했다고 하여 인색하다고 비난했던 모양이다. 맹자는 왕의 이러한 행위가 눈앞에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만 있으면 왕도정치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한 마리 소가 죽어가는 것에 가슴 아파하는 그러한 자세로 당시의 굶주리는 백성들을 볼 것을 역설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언급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 불인인지심)’이 있다. 예전의 위대한 임금들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는 정치(不忍人之政 불인인지정)’이 있었던 것이다. ‘불인인지심’을 가지고 ‘불인인지정’을 하니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위에서 놀리는 것처럼 쉬웠다. “사람들에게 ‘불인인지심’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 문득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 마을의 벗들에게 칭찬받고자 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것으로 살펴보면,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 시비지심)이 없어서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그 유명한 ‘성선설’을 설파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요지는 모든 이에게 ‘불인인지심’이 있고, 이러한 불인인지심을 가지고 하는 정치, 즉 불인인지정을 하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불인인지심, 즉 타고난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불인인지심은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말하는 것이며, 불인인지정이란 왕도정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즉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서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정치가 왕도정치이고, 왕도정치를 실현하면 당시의 주인 없는 중국 땅에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그대로 정치 현실에서 발현하면 되니 얼마나 쉬운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맹자는 왕도정치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짐승처럼’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우선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맹자는 ‘항산(恒産)’이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항(恒)’은 ‘일정함’, ‘항구적임’을 말하고, ‘산(産)’은 재산, 재화를 말한다. 즉 일정한 재화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먹고살 일정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지을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고,… 집 부근의 다섯 이랑의 텃밭에 뽕나무를 심으면 나이 50인 사람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며, 닭 돼지 개 등의 가축을 때에 맞게 기르면 나이 70인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백 이랑의 밭에서 농사지을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 70된 자들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데, 그렇게 하고도 왕노릇하지 못한 자는 없었다. … 길에 굶주리고 유랑하는 자들이 있는데도 곡식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을 모르고서 백성이 죽으면 ‘내가 아니라 흉년이 죽인 것이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아니라 칼이 찔러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맹자가 살던 당시에 농사는 주요 산업이었다. 따라서 한 해 농사의 성패에 국가의 한 해가 달려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지배층은 농사지을 시기에 성을 쌓거나 전쟁을 함으로써 백성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없게 하는 일이 많았다. 맹자의 이 언급은 우선적으로 백성들이 자신의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면 마땅히 국가의 창고를 열어서 구제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방기하는 국가, 또는 군주는 백성의 죽음을 단순히 ‘방기’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죽이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자,  인간이면 모두 가진 '남의 불행을 보고서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도 가지지 못한 자가 행할 행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가 임금이라면, 그를 임금으로 여기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그가 이처럼 ‘항산’을 주장하는 이유는 항산을 보장해줘야 백성들이 임금에게 일정한 마음, 즉 충성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임금은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중국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백성들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안전을 꾀하고, 사회적 안전을 꾀함으로써 기성 질서의 안녕을 획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반 백성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에 대한 관심보다는 기성 질서의 안녕에 관심이 있었으며, 백성들은 어떤 사회적인 주체가 아니라 대상, 또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맹자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맹자의 한계를 시대적인 것이라고 변명해주는 것은 무리일까? 이처럼 시대적 한계라는 측면에서 맹자 사상을 바라보기보다는 시대적 한계를 갖는 그의 생각에도 못미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맹자는 기원전371년경에 태어나 289경에 죽었으니 지금부터 약 2300년 전 사람이다. 그러한 그도 제대로 된 정치의 출발점이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있음을 인지하여, 백성들에게 안정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해줄 것을 역설한다. 2300년 전의 맹자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안정적으로 팔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는, 비바람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킬 공간마저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그 공간에서 쫒겨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현실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인권’이라는 근대적 개념조차 그 앞에서 들먹일 필요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말 하나를 인용한다.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社稷-땅 신과 곡식 신, 또는 그 신에 대해 제사지내는 곳으로서 농경에 기반을 둔 당시 국가에서 근간으로 여김)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고, 임금은 가장 하잘 것 없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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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꼬랑지 내리기)

동양학과 인권이 만나면 뭐가 나올까? 이것은 읽는 이들에게 어떤 답을 유도하기 위해서 하는 형식적인 질문이 아니다. 솔직히 나 자신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이 코너를 맡아서 쓰기로 한 나 자신이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자본’이며, 이 ‘자본’은 서양의 역사를 중세와 근대로 나누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인권’은 이 ‘자본’과 함께 등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권’은 서양 근대의 산물이다. 물론 동양에도 미약하게나마 ‘자본’의 등장과 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동양의 역사를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은 동양 내부에서 크게 성장하지 않았고 서양의 동양 침탈 과정에서 이식되었다. 이로 인해서 동양의 기성 기치관과 그 가치관을 형성하고 반영하는 동양학은 이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의 역할은 이식된 서양 학문 체계에 내맡기고 박제화되었다.

이처럼 ‘인권’은 서양 근대의 산물이고, 동양학은 ‘인권’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과는 무관하게 형성되었다. 그런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두고서 비교, 결합, 논의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둘을 같은 선상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인권’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동양의 각 학파, 학자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작업, 그리고 이들의 차이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작업 이후에 과거의 학파나 학자를 현대로 데리고 와서 ‘인권’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과연 동양학에서 ‘인권’과 결합할만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이런 글을 쓰는가? 글쎄. 어떤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라기보다는 이런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쓴다고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이런 면에 관심을 두고 글을 써보고자 함을 밝혀야겠다.

1)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의식 속에는 여전히 농경 사회에 기반한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현대적 사고와 충돌하며, 다른 어떤 것은 현대적 사고를 보완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며, 보완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 현대적 사고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것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정해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우리 의식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 한 번 들춰내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서있는 지점은 ‘인권’이다. 어떤 사고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라는 기준에 적합하거나 부적합한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2) 동양의 수 천년 전의 문헌들에 입각하더라도, 현대 사회의 면면들은 퇴행적이다. 고리타분함과 진부함의 대명사인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조차도 통탄할만한 상황이 요즘 심심찮게 벌어진다. 과거의 동양사상가들에게서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그들에게는 모든 인간이 같은 인간으로서 어떤 권리를 갖는다는 사고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사상은 오히려 현대의 수구 논리들보다는 진보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

나머지는 글을 써가면서 정리하고자 한다. 욕심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뭔가를 찾아가고 싶은데, 일단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