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인가?
배경
홍콩의 입법 회의 조례(Legislative Council Ordinance)는 홍콩 특별 행정구(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의 입법 회의 선거의 선거인 등록과 선거의 이행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에서 통상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모든 영구 거주자(permanent resident)는 선거인으로 등록할 수 있고, 정해진 시기 이전에 선거인 최종 등록부에 등록한 자는 입법 회의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선거인 등록에 관하여는 위 조례 section 31 (1) (a)-(c)에 의하여, 투표에 관하여는 위 조례 section 53 (5) (a)-(c)에 의하여 일정한 유형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와 수감자에 대해서 그 자격을 박탈하고 있는데, 즉 첫째 홍콩 또는 다른 지역에서 사형 또는 실형을 선고받은 자로서, 그 형기를 마치는 등 하거나, 또는 특사를 받거나 하지 않은 자, 둘째 등록 신청일에 복역 중인 자, 셋째 선거 부패 및 부정행위 조례(the Elections Corrupt and Illegal Conduct Ordinance), 뇌물 방지 조례(the Prevention of Bribery Ordinance) 등의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가 그들이다.
수감자 등의 위헌 심사 청구
그런데, 2008년 8월 8일 한 수감자가 입법 의회 조례 중 등록 신청일에 복역 중인 자에 관하여 선거인 등록 및 투표 자격을 박탈한 section 31 (1) (b) 및 53 (5) (b)에 대한 위헌 심사 및 선거관리위원회(the Electoral Affairs Commission)에 당시 복역 중인 홍콩 영구 거주자들에게 2008년 9월 7일 실시되는 입법 회의 선거를 위한 투표소에 대한 접근 수단을 제공할 것을 지시하는 직무집행 명령(an order of Mandamus)을 청구하였고, 같은 달 15일 또 다른 수감자가 위와 비슷한 청구 등을 하였다. 그리고 2008년 8월 11일에는 한 입법 회의 의원이 위와 비슷한 청구를 하는 한편, 위 조례 중 홍콩 또는 다른 지역에서 사형 또는 실형을 선고받은 자로서 그 형기를 마치는 등 하지 않은 자에 관하여 선거인 등록 및 투표 자격을 박탈한 section 31 (1) (a) (ⅰ) 및 53 (5) (a) (ⅰ)에 대한 위헌 심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자 등에게 위 선거를 위한 투표소에 대한 접근 수단 또는 시설을 제공할 것을 지시하는 직무집행 명령을 또한 청구하였다.
법원의 판결
위 사건들을 접수한 고등 법원(High Court)은 2008년 8월 18일 위헌 심사 청구를 허가한 다음, 2008년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심문을 실시하고, 2008년 12월 8일 다음과 같은 판결을 하였다.
“투표권은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권리이다. 수감자의 투표 및 선거인 등록에 대한 현재의 일반적이고, 자동적이며, 무차별적인 제한은 비례성 심사(proportionality test)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없다. 입법 의회 조례 section 31 (1) (a) (b) 및 53 (1) (a) (b)에 따른 자격 박탈 조항은 ... 홍콩 기본법(the Basic Law) 제26조, 홍콩 권리장전(the Hong Kong Bill of Rights) 제21조 및 위 제21조를 상술한 홍콩 권리장전 조례(the Hong Kong Bill of Rights Ordinance) section 8 이하에 의하여 헌법적으로 보장된 투표권을 침해하였다. 수감자와 유죄 판결을 받은 자가 선거일에 투표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투표권 제한의 합리적인 범위에 대하여는 “합리적인 제한을 결정하는 가설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법원의 임무가 아니다. 그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업무다. ... 나는 법원이 선거 또는 심지어 등록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제한이 입법부에 의하여 수감자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가하여 질 수 없다고 제시하고 있지 않음을 강하게 강조하고 싶다. ... 법원은 그 구분선이 어디에 그어져야 하며 어떻게 그어져야만 하는지와 무관하다. 그것은 입법부가 해결할 문제이다.”라고 하였다.
행정부의 여론 수렴 및 법안 상정
위와 같은 판결이 내려지자, 언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다. 또한 행정부, 즉 정제급내지사무국(政制及內地事務局, The Constitutional and Mainland Affairs Bureau)에서는 2009년 3월 23일까지 6주간의 공청회(public consultation)를 실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70여개의 제안서가 제출되었으며, 공개 토론회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위 사무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 2009년 4월 9일 공청회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수감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출된 제안서 중 49%가 형기와 무관하게 수감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원하였고, 24%는 수감자와 선거 관련 및 뇌물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자격 박탈을 철폐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단지 4%만이 형기에 따라 수감자의 투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옹호하였다. 또한, 조사에서는 약 57%의 응답자가 수감자에게 형기와 무관하게 투표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하였고, 34%가 모든 수감자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즉, 형기와 관련 없이 모든 수감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견해가 일치하나, 선거 관련 또는 뇌물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견해가 갈렸다.
그러나 투표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근본적인 정치적 권리인 점,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그의 범죄로 인해 복역을 함으로써 이미 처벌됨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표권을 박탈함으로써 추가 처벌을 가하는 것은 불공정한 점, 많은 해외의 법리가 수감자의 투표권에 대하여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형기는 물론 범죄의 제한이 없이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위 사무국은 2008-2009 입법 회기 내에 그와 같은 내용으로 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시사점
위와 같은 홍콩의 사례는 수감자에게 투표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인가, 보장되어야 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떠나, 사법부는 물론 입법부와 행정부가 국민(영구 거주자),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수감자의 기본권 보장의 문제에 직면하여 서로 간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였던 점, 행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여론 수렴절차를 거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법안을 만든 점, 그리고 그 절차를 통하여 활발히 의견을 제시한 시민사회의 역량 등 민주주의적 문제 해결 방식의 한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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